- “물론” 원저자 허락없이 야매로 옮기는거니까 유의하시고,
- 아래 글에서 ‘엔드게임’ 이라 불리우는건 한국 게이머들이 흔히 ‘만렙 컨텐츠’라고 부르는 그겁니다.
(여전히 MMO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나가는 중이다. 오늘의 논의 주제는 레벨업이다. 굳이 만렙을 달 때까지 수개월 또는 수일이 소요되도록 만들어야만 할까? 언제나처럼, 장단점이 모두 있기 마련이다.)
MMO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는 레벨업과 엔드게임이다. 많은 게이머들은 엔드게임이야 말로 진짜 게임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레벨업 과정은 그걸 위해 훈련받는 시간이라고들 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대부분의 MMO들은 높은 만렙을 가짐으로써 플레이어들이 엔드게임에 준비될 때까지 몇달을 더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편 몇몇 MMO들은 불과 며칠만에 만렙을 찍을 수 있는 실험을 했던 적이 있다. 길드워의 경우 만렙이 20이었고, DC 유니버스 온라인은 30이었다. 만렙이 낮기 때문에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엔드게임을 접하게 되는게, 높은 만렙에 비해 더 낫지 않을까?
일단 만렙이 높은 경우부터 생각해보자. 높은 만렙은 몇 가지 핵심적 장점을 갖는다. 첫째로 이 모델은 명확한 성장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 레벨 5인 캐릭터와 레벨 70인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일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이런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만렙까지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종의 ‘런닝머신’ 심리로 디자인되었다.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크래프팅과 같은 곁가지 활동들이다. 플레이어들이 게임내 세계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낼 것인만큼, 이런 곁가지 활동들은 게임 플레이가 여러 갈래로 다양화될 수 있게 돕는다.
아울러 게이머들은 레벨업의 과정동안 상당히 많은 지역을 방문하게 된다. 탐험할 색다른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World of Warcraft나 EverQuest2는 그런 기대에 보답한다. 한편으로 게임내 월드의 광대한 면적은, 저렙들을 찾아 괴롭힐 생각으로 가득한 이들이 한 장소에서만 집중적으로 그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도 있다. 저렙들이 여기저기 넓직한 곳에 흩어져서 레벨업을 하기에,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저렙을 학살하는게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편, 만렙이 높을 경우의 문제점으로, 대부분의 MMO들이 캐릭터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플레이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일반적으로 만렙을 찍기 전에 게임에 대해 많은걸 알아버린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이미 게임에 대해 상당히 알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엔드게임을 하려면 여전히 레벨을 더 높여야 한다. 예를 들자면 식사시간에 자기 접시 위의 채소를 다 먹지 않는다면, 결코 달콤한 디저트를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울러 컨텐츠가 광범한 레벨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컨텐츠를 다양하게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만약 당신이 꽤 괜찮은 퀘스트를 하나 봤다면, 이제 더이상 그런 퀘스트는 없다. 컨텐츠로 채워야 할 공간이 너무도 많아서, 각각의 섹션에 독특하고 참신한 컨텐츠를 채워넣는데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디자이너들은 여기에 필요한 시간을 모두 갖게되는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 컨텐츠를 채워 넣어야 할 공간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자칫 게이머들이 게임을 접게 만들 수도 있는 두 가지 시나리오로 상황을 몰고간다.
City of Heroes의 초창기, 디자이너는 시간에 쫓겨서 35레벨부터 40레벨 사이의 컨텐츠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플레이어들은 5레벨동안 개노가다를 하고나서야 새 미션을 받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 즉 재미는 부끄럽게도 이 지점에서 급감해버렸고, 이 고비를 넘겨야만 다시 흥미있는 컨텐츠들이 펼쳐졌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이 런닝머신에 뭔가 쌔끈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경우이다. 본게임 (엔드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몇개월간이나 같은 일을 해야한다는건, 컨텐츠의 부족만큼이나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다. 나는 World of Warcraft가 런칭했을 때 6개월간 이 게임을 플레이한 일이 있었다. 그맘때쯤 내 캐릭터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건 50 이었고, 사실상 레벨 40 근처에서 나는 캐릭터의 레벨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난 지나치게 평범한 컨텐츠들이 지겹도록 계속되는 바람에 결국 게임을 그만둬버렸다.
아울러 높은 만렙의 장벽은, 새로운 캐릭터를 시도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나만 키우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드코어 플레이어들은 제외하고) 첫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레벨 구간의 컨텐츠는 대체로 다채로우며 비교적 쉬운 편이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게임과 자신들의 클래스에 익숙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플레이어가 시작지점을 떠나면, 모든 이들이 같은 퀘스트를 수행하게 되는, 보다 평범한 지역으로 가야만 한다.
얘기를 옮겨서, 만렙이 낮은 경우를 살펴보자. 만렙이 낮기 때문에, 대체로 사람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얼추 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챌 때 즈음에, 만렙이 된다. 레벨업에 필요한 컨텐츠의 양이 적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엔드게임을 바라는걸 잘 하는 디자이너들은 엔드게임에 더 많은 컨텐츠를 넣을 여유를 갖게 된다.
PvP 는 대체로 게임을 더 낫게 만들어주며 그래서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인데, 앞서 했던 말대로,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길드워의 경우, 플레이어들이 일단 만렙에 도달하고나면 보다 PvP에 중심을 둔 게임이 되며, 자신들이 익힌 다양한 스킬들을 여러 경기를 통해 시험할 수 있었다.
부캐를 만드는 경우 역시 이에 소요되는 시간이 몇달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더 수월하다. 플레이어들은 따라서 여러 클래스를 시험해보며 즐길 수 있다. 아울러 만렙이 낮은 게임의 디자이너들은 대체로 만렙이 높은 게임에 비해서 더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시험하려한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길드워에서, 퀘스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스킬들과 이를 한정하는 스킬바의 기능으로 인해, 일종의 TCG 비슷한 컨텐츠가 만들어졌던 바 있다. DC 유니버스의 전투는 보다 액션 게임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퀘스트 완료로 게이머들에게 주는 보상 또한 달랐다. 이는 이후에 다른 논의를 시작할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럼 만렙이 낮은 게임의 단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컨텐츠에 관련한 만렙 높은 게임과는 다른 문제가 있다. 만렙이 낮은 게임에서는 엔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더 많은만큼, 디자이너들은 성장구간이 아닌 엔드게임에서 더 많은 컨텐츠를 디자인해야만 한다. 대체로 만렙이 낮은 게임들은 앞서 말한 크래프팅과 같은 곁가지 활동이 많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플레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엔드게임 컨텐츠도 끊임없이 계속 제공되어야 한다. 다른말로 하자면, 쉴새없이 석탄을 먹어대는 증기기관차처럼, 계속해서 석탄을 집어넣어줘야 하는 것이다.
DC 유니버스 온라인같은 경우, 엔드게임 컨텐츠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지 못했던 점이 치명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주일 이내에 만렙을 찍는 상황이었고, DC 유니버스는 자신들이 ‘한달에 한번씩 컨텐츠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들은 이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결국 이는 DC 유니버스가 부분유료화로 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보상의 부족함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만렙이 높은 게임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레벨이 올라가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걸 느끼는건 꽤 훌륭한 강점이다. 플레이어들이 만렙을 찍으면, 그들은 상당한 양의 스킬들과 다양한 장비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렙이 낮은 MMO의 경우, 이런 정도의 보상을 해주긴 어렵다. 대부분의 엔드게임 디자인의 경우 문제란 그것이 레이드를 중심으로 짜여진다는 점이다. (고렙 컨텐츠의 경우 더 큰 그룹의 플레이어들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의 목적은, 더 좋은 장비를 얻기 위해 레이드를 하고, 더 좋은 장비를 얻어서 더 많은 레이드를 하게되며, 이 순환 과정이 게임에 질릴 때까지 반복된다는 것이다.
DC 유니버스 온라인은 엔드게임에 다양한 종류의 혼자 또는 둘이서도 가능한 레이드를 배치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장비를 얻기 위한 과정에 먹혀버렸을 뿐이다. DC 유니버스 온라인을 하면서 만렙에 도달한 이후 나를 당황시킨 부분은, 애초에 디자이너들이 이 게임에서 정액제가 제대로 동작할거라 생각했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이 게임이 가진 컨텐츠는 정액비를 내고 하기엔 부족하다. 길드워의 경우는 디자이너들이 ‘우리 게임의 컨텐츠는 정액제로 서비스하기엔 부족하다’ 라는 점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상 DC 유니버스 온라인에서도 그랬어야 할 부분이었다.
마지막 요소는 흥미롭다. 내가 본 만렙이 낮은 MMO들은 대부분 부분유료화로 시작하거나, 부분유료화로 전환한다. 내 생각에 이건 컨텐츠가 핵심적인 관건이지 싶다. 하지만 70레벨까지의 컨텐츠를 단조롭고 평이한 퀘스트로 채우는 것은 차라리 레벨 30까지의 게임 플레이를 독창적인 컨텐츠로 채우는 것보다 쉽다.
내 견해에 대해 말하자면, 공식적으로 말하건데, 부분유료화 모델을 더 좋아한다. 내가 선호하는 것은 만렙이 낮고, 나 자신의 실력에 기반한 게임플레이를 시도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논의의 양쪽을 모두 잘 살펴보면서 ‘경험의 단계’ 까지 고려해본다면, 만렙이 높은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는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만렙이 낮은 게임에서는 게임 플레이 자체가 목적이 된다.
개인적으로, 만렙이 낮은지 높은지와는 무관하게, 엔드게임에 대한 전통적인 모델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지 더 나은 장비를 얻고자하는 목적만으로 레이드를 하는 것은 나에겐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엔드게임 컨텐츠는 단순히 더 반짝거리는 장비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실체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어야 하며, 가장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다양한 게임들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엔드게임이야 말로 “진정한 게임이 시작되는 곳” 이다.